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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제길 나 이렇게 살았어/나의 하루

[매일, 메일 교환 일기] 우주적인 안녕.

2024년 10월 31일 23시 48분

<정수은의 하품평화론>
  찾아보니 우리 교환일기의 시작이 4월 30일이였구나. 그로부터 6개월이라는 시간이 지나갔다~ 반년이라고도 하는 그 시간이. 너네들은 어떻게 지냈니? 난 누가 나한테 어떻게 지내냐고 물어보면 항상 “뭐 언제나 그렇듯 얼레벌레 사는 중이지”라고 말해. 얼레벌레라는 말은 사전에도 없더라고. 입에 딱 달라붙는다. 얼레벌레. 얼레벌레.

  사랑이(개, 2011~2022)가 하품을 하는 걸 보면서, “하품에 평화가 깃든다.”라는 생각을 했었어. 피곤할 때가 아니라 심심할 때, 평온할 때 하는 그런 하품은 말이지. 아주 평화로워. 심심하면 “아 뭐 할 거 없나?”, “낮잠이나 때릴까” 이런 생각이 들지. “아~ 심심한데 누구랑 싸워볼까?” 이런 생각이 들지는 않잖아? 그니깐 이 세상은 조금 더(아니 아주아주아주) 심심해져야해.

  그렇기 때문에 나는 앞으로도 얼레벌레 살아갈 예정이다.


<우주적인 안녕>
  지난 주 화요일(10. 22.)에 언제나처럼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담배를 피우러 집 밖에 나갔는데, 어디선가 고양이가 나한테 왔어. 바람막이를 타고 올라서 얼굴까지 막 올라오더라고. 비가 오고 있었는데 이거이거 어쩌나 싶어서 일단 집에 데리고 들어와서 차장한테 전화해서 오전에 반차를 냈어. 고양이를 구조하고 키우고 있단 것만 알고 그다지 친분 없는 아는 회사분께 전화로 물어보니 울진읍에 있는 동물병원은 아주 급한 거 아니면 가지 말고 삼척에 가는 걸 추천해주셔서, 40-50분 운전해서 동물병원에 갔어. 뭔지 모를 주사 한 대를 맞고, 다음 주에 다시 와서 예방접종을 받기로 했어.

(그 분한테 문자로 돈도 들고 챙겨야할 것도 많으니, 권하는 건 아니지만 지금이라도 있던 곳에 놔두는 것이 좋을 수 있다… 라는 메시지를 받고 고민 끝에 입양을 보내든 안 보내지면 나랑 같이 살든 일단 같이 지내보기로 했어.)

  요즘 도시마다 반려동물 용품점이 하나씩 있잖아. 삼척 홈플러스 앞에 하나 있더라고. 거기에 가서 모래랑 화장실, 사료, 스크래쳐 숨숨집. 이정도 사서 집에 왔어.

  밥도 곧잘 먹고 물도 잘 마셔서 다행이라고 생각했어.

  수요일에는 당근에 사료 자동급식기가 있어서 하나 샀어. 가지고 오니까 바로 적응하길래. 이거이거 천재 고양이구먼, 생각했지. 거실에 있는 빈백에 오줌을 한 번 싸긴 했는데, 그 다음부터는 바로 모래에 배변 하더라. 정말로 천재 고양이였어.

  이름도 지어줬어. 한강 작가의 소설집 제목이자 그 책의 표제작인 “노랑무늬영원". 그리고 나는 그 책에 있는 다른 소설 중 하나인 “회복하는 인간"

  근데 점점 밥을 안 먹고 물을 안 마시기 시작했어. 근데 사실 난 그것도 잘 몰랐어. 처음 온 날부터 잘 먹고 잘 마셔서 알아서 먹고 마시나보다 했는데 아니였어.

  이번 주 월요일(10. 30.)에 병원에 가니 수의사 선생님이 상태가 안 좋다고 하셨어. 그래서 수액을 맞고, 약도 처방 받아 왔어. 주사기로 약을 먹이고(반은 흘렸어) 습식 사료를 물에 타서 주사기로 강제 급여 하는데… 헛구역질 하듯 발작을 하다가 죽었어.

  어떻게 해야할지 몰라서 읍내에 아시는 분께 전화했어. 그냥 어쩌면 좋나… 하는 마음에 전화한 거였는데, 바로 집까지 와주셔서 같이 우리집 뒷뜰에 묻어줬어.

  난 어린 고양이가 그렇게 연약한 존재인지 몰랐어.

  나 때문에 죽은 것 같단 생각에 괴로워. 더 잘 보살펴줬어야하는데. 주변 사람들은 “그래도 너한테 돌봄 받다 간 거다.”, “넌 최선을 다한 거다.”라고 하는데 아닌 것 같아. 일단 1박이였지만 토-일 울릉도 간 것도 미안하고. 밖에보다는 따뜻하겠지 생각하고 집을 20-21도 정도로만 난방을 한 것도 마음에 걸려. 밥을 안 먹고 있으면 왜 안 먹는지 생각이라도 해봤어야 하는데.

  응, 나도 알아 할 필요없는 생각이란 거.

  내가 집에 안 들여오고 그냥 밖에 있었다면 살아있었을까? 내가 뭔가 더했다면? 아니면 내가 뭔가 덜했다면? 아프다고 발버둥치는 건 살고싶단 걸까, 고통이 끝났음하는 걸까?

  대관절 내가 이 생명보다 더 소중하거나 의미있는가? 내 대답은 “아니”였어.

  우주적인 안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