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편지는 잘 받았어. 읽고는 묘한 공감과 만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 너는 편지에서 "나는 도대체 어디부터 잘못된 걸까?",라고 했는데 내가 대답해줄게. 태어난 게 잘못이야. 인간은 인과관계가 이해되지 않을 때 굉장히 불안을 느끼는데 우리가 이 세상에 존재하는 이유 그리고 이렇게 계속 살아가는 이유를 생각하다 보면 그런 불안에 부딪히게 돼버려. 근데 사실 삶의 의미 따위는 없어. 다만 각자 자기 자신에게 부여할 뿐이지. 어떤 이들은 신의 이름으로 삶의 의미를 누군가 주기를 바라고, 그렇다고 믿으려 하지만 난 그건 비겁한 일이라 생각해. 아무리 어려운 질문이라도 자기가 답하려고 노력해야 돼. 그 대답이 개소리에 불과하더라도.
내게 삶은 큰 의미가 없지만 나의 고통이나 행복이 실재하고 타인의 고통이나 행복또한 그러기에 할 수 있는 한 나 자신은 즐겁게 그리고 사회는 좀 더 행복하게 만들고 싶어.
나도 인간관계가 너무 힘들어. 주위 사람들은 원래 그런 거라 말하는데 나만 유달리 더 힘들게 느껴지는 건 착각일까? 모두들 안고 살아가는 걸까? 정말 모르겠다.
여자애 얘기도 적었던데 어떻게 됐어? 만나기는 했어? 내가 사랑이나 연애에 대해선 무어라 조언을 할 수 없겠지만 하나 확실하게 말해줄 수 있는 건 "어차피 후회하게 될 텐데 안 하고 후회할 바엔 하고 후회하자!" 나는 올초에 대구에 20살 애 하고 만나보려 하다가 까였는데(?) 오히려 그렇게 시원하게 결론이 나니깐 더 괜찮더라 아니었으면 있지도 않는 가능성에 희망만 둬서 가슴앓이를 했겠지.
2달 후 즈음이면 길게만 느껴진 이 군생활도 끝이네. 회사 다니며 돈 벌기 너무 싫다. 무슨 직업을 가져야 좋을까. 일단 대학에 가야겠지.
너도 이래저래 생각이 많겠지? 거짓말 같겠지만 괜찮아, 잘 할 수 있을 거야. 그리고 삶은 생각으로 쓰는 게 아니라 행동으로 쓰는 거래. 부족하지만 조금씩 걸으면 살자.
이제 마지막 책 두 권을 건네야겠네. 그럼 안녕.
영원한 건 없지만 언제까지나 넌 소중한 친구야.
2017년 10월 13일
정수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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